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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7 추억 상자 (7)
生의 記錄2008.12.07 23:58

 추억 상자라고 부르는 녀석이 있다.

 기념할만한 혹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 후에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담아두는 적당한 사이즈의 상자다.
 영화표, 기차표, 비행기 티켓 등부터 시작해서 여행가서 얻거나 생겨난 물품, 전 여자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나 선물, 그동안 사용했던 아이디어 노트, 몇 번이고 들쳐봤던 조그만한 핸드북 등이 여기에 들어있다. 여권이나 통장, 계약서 같은 중요한 물품들도 담아두는 편이다.

 첫번째 상자는 중학생 시절에 채웠던 운동화 박스였고 두번째 상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채웠던 핑크색 핑크팬더 박스, 세번째 상자는 대학 4년 + 현재까지 쓰고 있었던 나이키 운동화 박스다. 박스의 크기는 비슷한데.

 방 계약 때문에 도장이 필요해서 집을 뒤적거리다가 여기에 있을 확률이 높아 오랜만에 추억 상자를 꺼내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도장은 찾지 못하고 계약을 하게 되었고, 후에 집에 들어와서 정리하는 김에 다 뒤집어 꺼내보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추억 상자가 거의 포화상태라 새로운 상자를 하나 만들었다. 여자친구가 옷을 선물해줬을 때 같이 주었던 옷상자. 넓직한 것이 커다란 팜플릿 등을 넣어두기 용이한 것 같아 썩 마음에 든다. 

 새로운 상자에 넣기 적합한 것들을 옮겨 담는데, 옛 냄새가 넘실대는 것이 간질간질하다. 못이기고 대학 시절 사용하던 아이디어 노트를 들춰봤는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시험 준비로 밤샘하면서 끄적거리던 글귀들이 낯이 간지럽다. 정말 어색하지만 어설프게 휘갈긴 낙서들도 보고 있으려니 간진간질하다. 결국 얼마 보지 못하고 박스에 던져버렸다.

 낯간지럽고 어설프긴 해도 지금보단 낫다. 틈이 생길 때, 이번달 생활비가 어떻고 패치가 언제니 이 기능은 언제까지 구현해야하며 이번 주 월요일엔 회사 동기 모임이 있으며 수요일엔 여자친구를 만나고 금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였지? 아 집에 가면 밀린 설거지를 해야 하는구나 등등의 생각을 하다보면 틈이 사라져 버린다. 가방에 펜과 노트가 없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생각이 났는데 노트가 없어 휴지쪼가리에 끄적끄적대던 모습도 온데간데 사라져 버렸다. 

 여자친구를 졸라 노트를 하나 얻었다. 손바닥만한 것이 마음에 든다.
 이 노트를 다 채우는데 얼마나 걸릴까.
 머리에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으니, 조금씩 output을 뽑아낼 수 있기를.


 
Posted by 飛烏